북한이 한국을 ‘적대적인 두 국가’의 한쪽으로 규정한 가운데 북러관계는 무기 거래와 외교적 협력을 넘어 상호 군사원조를 보장하는 사실상의 동맹으로 발전했다. 북한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원하며 경제적 보상과 군사기술을 확보하고, 러시아는 북한을 전쟁 수행과 대미 견제를 위한 전략적 협력국으로 끌어들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24년 6월 평양에서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관계 조약’을 체결했다. 조약은 같은 해 12월 비준서가 교환되면서 발효됐다.
조약 제4조에는 한쪽이 무력 침공을 받아 전쟁 상태에 처하면 다른 쪽이 지체 없이 군사적 지원을 제공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1961년 북한과 소련이 체결한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조약 이후 사실상 사라졌던 자동 군사개입에 가까운 조항이 되살아난 것이다.
북러관계의 성격을 결정적으로 바꾼 것은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이다. 북한은 2024년부터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에 병력을 보내 우크라이나군과의 전투에 참여했다. 북한과 러시아도 2025년 4월 북한군의 참전 사실을 처음으로 공식 확인했다.
러시아는 북한군이 쿠르스크 지역에서 러시아 영토를 방어하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북한은 파병이 북러 조약에 따른 정당한 군사행동이라고 주장했다. 북한군의 해외 전쟁 참전은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평가되는 대규모 실전 투입이다.
외국 정부와 정보기관들은 북한이 러시아에 1만명 이상의 병력을 보낸 것으로 추산했다. 이후 추가 파병과 병력 교대 가능성도 지속해서 제기됐다. 정확한 파병 규모와 사상자 수는 북한과 러시아가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아 기관별 추정치에 차이가 있다.
북한은 병력뿐 아니라 포탄과 탄도미사일, 다연장로켓 등도 러시아에 공급한 것으로 파악된다. 러시아는 장기화한 전쟁에서 부족해진 포병 탄약을 확보했고 북한은 대량 생산한 재래식 무기를 외화와 물자, 기술로 바꿀 기회를 얻었다.
북러 협력은 단순한 무기와 병력의 교환에 그치지 않는다. 북한군은 드론과 정찰자산, 전자전 장비가 집중적으로 운용되는 현대전에서 실전 경험을 축적했다. 참전 군인과 지휘관이 북한으로 돌아가 전술과 훈련체계를 개편하면 북한군의 실제 전투 능력이 향상될 수 있다.
한국과 미국이 주목하는 것은 러시아의 반대급부다. 북한은 러시아로부터 식량과 에너지, 외화뿐 아니라 정찰위성, 탄도미사일, 방공망, 잠수함과 핵 관련 기술을 얻으려는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구체적으로 어떤 첨단 군사기술이 어느 수준까지 이전됐는지는 공개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러시아가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사실상 용인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도 북한에는 중요한 외교적 성과다. 러시아는 과거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대응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에 동참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에는 제재 체제의 해체를 요구하고 있다.
러시아는 2024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의 임기 연장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에 따라 북한의 제재 위반을 조사하고 공개해온 전문가패널의 활동이 종료됐다. 북러 간 무기 거래와 해외 노동자 파견을 감시할 국제사회의 역량도 약화됐다.
북한은 러시아와의 밀착을 통해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효과도 얻었다. 과거 북한의 공식 교역과 에너지 공급은 대부분 중국에 의존했지만 러시아라는 새로운 후원국이 등장하면서 평양의 외교적 선택지가 넓어졌다.
러시아 역시 북한과의 관계를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맞서는 연대의 일부로 활용한다. 북한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하고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지역의 편입을 인정했다. 러시아는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비판하기보다 미국과 한미일 군사협력에 책임을 돌리고 있다.
2026년에도 양국의 고위급 교류는 계속됐다. 최선희 북한 외무상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모스크바에서 전략대화를 열고 포괄적 전략동반자조약 이행과 외교·경제·군사 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했다. 최 외무상은 푸틴 대통령을 만나 김 위원장의 메시지도 전달했다.
김 위원장은 북한 정권 수립 78주년을 계기로 푸틴 대통령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러시아가 벌이는 전쟁을 지지하며 양국 관계를 모든 분야에서 확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북러관계를 일시적인 전시 협력이 아니라 장기적인 국가전략으로 유지하겠다는 의미다.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과 북러관계는 서로 맞물려 있다. 북한은 한국을 통일과 교류의 상대가 아닌 별도의 적대국으로 규정한 뒤 러시아와의 군사협력을 대남 억제력 강화에 활용하고 있다. 남북관계 단절에 따른 경제·외교적 부담도 러시아의 지원으로 일부 보완할 수 있게 됐다.
러시아가 북한의 대남노선을 지지하면 북한이 이재명 정부의 대화 제안에 응할 필요성은 더욱 낮아진다. 남북경협이나 한국의 지원 없이도 러시아와 중국을 통해 필요한 자원과 외교적 후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판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북러 군사동맹은 한반도 유사시에도 새로운 변수가 된다. 조약상 상호 군사원조 의무가 실제로 적용되면 한반도 충돌에 러시아가 개입할 법적·정치적 근거가 생긴다. 반대로 북한군이 러시아의 다른 분쟁 지역에 추가로 투입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에는 직접적인 안보 위협이다. 러시아의 군사기술이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정찰위성, 잠수함 능력 향상으로 이어지면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와 한미 연합방위태세에도 부담이 커진다. 실전 경험을 쌓은 북한군의 전술 변화 역시 면밀히 분석해야 할 대상이다.
한러관계도 북러 밀착으로 크게 악화했다. 한국 정부는 북한의 대러 무기 공급과 파병을 규탄하고 러시아에 군사기술 이전을 중단하라고 요구해왔다. 러시아는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직접 지원할 가능성을 경고하며 맞서고 있다.
북러관계 강화는 동북아의 진영 대립도 가속한다. 북한과 러시아가 군사적 결속을 강화하면서 한국·미국·일본은 미사일 경보정보 공유와 연합훈련을 확대하고 있다. 북한은 이를 다시 자국의 핵·미사일 증강과 북러동맹 강화의 명분으로 활용한다.
다만 북러관계에도 이해관계의 차이는 존재한다. 러시아는 전쟁 수행을 위해 북한의 포탄과 병력이 필요하지만 북한의 무제한적인 핵·미사일 도발로 동북아 정세가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지는 것은 부담이다. 북한도 러시아에 지나치게 의존할 경우 중국과의 관계와 외교적 자율성이 약해질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방도 북러관계의 중요한 변수다. 전쟁이 계속되면 러시아의 북한 무기와 병력 수요도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반면 휴전이나 종전이 이뤄지면 양국이 군사협력을 경제·에너지·노동·교통 분야로 전환할 수 있을지가 관계의 지속성을 결정하게 된다.
적대적 두 국가론 아래에서 북러관계는 북한이 한국과의 관계 단절을 감수할 수 있게 만드는 핵심 기반으로 작용하고 있다. 북한은 러시아의 전쟁을 지원하고 러시아는 북한의 체제와 군사력 강화를 뒷받침하는 상호의존 구조다.
북러관계가 전시 협력을 넘어 장기적인 군사동맹으로 고착하면 한반도 문제는 남북 간 대립을 넘어 유럽과 동북아 안보가 연결된 국제적 대결로 확대된다. 북한군 파병의 대가로 어떤 군사기술이 이전됐는지, 상호방위조약이 한반도에서 어떻게 적용될지가 향후 동북아 안보를 좌우할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