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고 민족과 통일 개념을 지우는 가운데 이재명 정부는 체제 존중과 흡수통일 배제, 적대행위 중단을 앞세운 대화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을 그대로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군사적 긴장을 낮추고 평화공존을 제도화해 대화의 출구를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북한이 한국 정부의 연이은 유화 조치에 호응하지 않으면서 정책 성과는 아직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김 위원장은 2023년 12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를 동족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규정했다. 이듬해에는 헌법에서 통일 관련 표현을 삭제하고 한국을 적대국으로 명시하도록 지시했다.
북한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와 민족경제협력국, 금강산국제관광국 등 대남기구를 폐지하고 평양의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도 철거했다. 2024년 10월에는 경의선과 동해선의 남북 연결 도로·철도 일부 구간을 폭파하며 물리적 단절에 나섰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강경 대응보다 긴장 완화 조치를 먼저 선택했다. 군은 2025년 6월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했고 정부는 민간단체에 대북전단 살포 중지를 요구했다. 접경지역 주민의 안전을 확보하고 남북 간 우발적 충돌 가능성을 낮추겠다는 취지였다.
이 대통령은 2025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북한 체제를 존중하고 어떠한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구하지 않으며 일체의 적대행위를 할 뜻이 없다는 대북정책 3원칙을 제시했다. 북한을 흡수하거나 체제를 붕괴시키려는 의도가 없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밝힌 것이다.
남북 군사적 신뢰 회복 방안으로는 9·19 군사합의의 단계적 복원을 제안했다.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적대행위를 줄이고 육상·해상·공중 완충구역을 다시 가동해 우발적 충돌을 예방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대통령은 2025년 9월 유엔총회에서 ‘END 이니셔티브’도 제시했다. 교류, 관계 정상화, 비핵화를 병행해 한반도의 적대와 대결을 끝내겠다는 내용이다. 비핵화를 대화의 선결 조건으로만 내세우지 않고 교류와 관계 개선을 함께 추진해 서로 진전을 끌어내겠다는 접근이다.
이는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에 ‘평화공존’으로 대응하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북한이 당장 통일 논의를 거부하더라도 충돌을 방지하고 교류와 대화가 가능한 관계부터 만들겠다는 것이다. 통일을 단기간에 달성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평화적으로 관리하고 준비해야 할 장기 과제로 다루는 데 무게가 실렸다.
정부 내부에서는 ‘평화적 두 국가론’을 둘러싼 논의도 이어졌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남북이 현실적으로 별개의 국가로 존재하는 상황을 인정하고 평화공존을 제도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후 이를 정부의 확정된 공식 입장이 아니라 통일부 차원의 구상이라고 정정했다.
대통령실은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을 공식적으로 수용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은 한반도 전체를 영토로 규정하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따른 평화통일을 국가의 책무로 명시하고 있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도 남북관계를 국가 간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특수관계로 규정한다.
이에 따라 이재명 정부의 평화공존 정책은 법적으로 남북을 영구적인 별도 국가로 인정하는 방안과는 구분된다. 북한의 체제를 현실적으로 존중하고 국가 간 관계에 준하는 방식으로 평화를 관리하되 최종적인 통일 목표까지 폐기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북한은 이재명 정부의 선제적 긴장 완화 조치와 대화 제안에 별다른 호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북한은 한국의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남북관계를 적대관계로 다루겠다는 태도를 이어가고 있다. 핵·미사일 능력 강화와 러시아를 비롯한 우호국과의 협력을 통해 대외전략의 중심을 재편한 만큼 남북대화를 서둘러 재개할 필요가 크지 않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과제는 대화 제안과 억제력 사이의 균형이다. 일방적인 양보로 비칠 경우 북한이 군사적 압박을 강화할 수 있고, 반대로 강경 대응만 반복하면 적대적 두 국가론을 뒷받침하는 명분을 제공할 수 있다.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비하면서도 군사적 오판을 막을 연락채널 복원과 인도적 교류를 추진해야 하는 이유다. 이산가족 상봉, 재해·보건 협력, 접경지역 충돌 방지 등 정치적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은 분야부터 접점을 찾는 방안이 거론된다.
이재명 정부의 대응은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에 같은 수준의 적대정책으로 맞서기보다 평화공존과 관계 정상화를 통해 대결 구도를 약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북한의 태도 변화 없이 한국의 선제 조치만 이어질 경우 정책 동력이 약화할 가능성도 있다.
결국 성패는 북한을 대화로 끌어낼 실질적인 유인책과 확고한 안보 태세를 동시에 마련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긴장 완화는 출발점이지만 그 자체가 남북관계 개선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북한의 침묵이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이재명 정부는 평화 메시지를 넘어 구체적인 위기관리 체계와 단계별 협상 전략을 제시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