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 귀환 어부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에서 법원이 기존보다 넓은 폭으로 피해를 인정하는 전향적 결정을 잇따라 내리고 있다. 과거에는 청구액의 5분의 1 수준에 머물렀던 배상 인정 범위가 최근 판결에서는 절반 수준까지 확대되며,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침해에 대한 사법부의 정의 실현 의지가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춘천지법 속초지원 민사부(재판장 김종헌)는 지난 18일, 납북 어부 김영수(70)씨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가가 김씨에게 1억7000만원을 지급하라”는 화해 권고 결정을 내렸다. 김씨의 자녀에게도 위자료 1000만원을 지급하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 결정은 양측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경우 확정 판결과 같은 효력을 갖는다.
김씨는 1971년 강원도 속초 인근 해역에서 조업 중 납북돼 1년간 억류되었다가 1972년 귀환했다. 그러나 귀환 직후 간첩 혐의로 불법 구금과 가혹행위를 겪고 반공법과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김씨는 재판 과정에서 “전기고문과 고통스러운 고문을 당했으며, 석방 이후로도 장기간 사찰과 감시에 시달렸다”고 밝혔다.
2022년 재심을 청구한 김씨는 2023년 5월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원은 당시 수사가 위법한 구속 상태에서 이뤄졌으며 진술의 임의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에 김씨는 3억518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재판부는 청구액의 절반 수준인 1억7000만원을 인정하고, 검찰의 기소로 인한 명예훼손 사실도 결정문에 명시했다.
같은 재판부는 이튿날인 19일, 또 다른 납북 어부의 배우자가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도 1억6000만원을 지급하라는 화해 권고 결정을 내렸다. 이는 기존 납북 귀환 어부 국가배상 사건들과 비교해 형평성보다 실질적 정의를 우선한 판단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재판장 김종헌 부장판사는 과거 4·3사건 관련 재심에서도 “판결문 없이도 재심이 가능하다”는 판례를 남긴 인물이다. 당시 그의 판결은 수형인 명부만을 근거로 수많은 4·3 피해자들의 무죄 선고로 이어졌다.
김씨는 판결 이후 “아직도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며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피해지만, 국가가 책임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인다. 다른 피해자들도 희망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